2014. 5. 11. 22:07

 신카이가 진술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한참이 지나고 나서였다. 공복 상태의 발광으로 인해 멘탈은 물론이고 체력도 방전된 아라키타가 신카이가 사온 음식들을 원수의 뼈와 살을 씹는 것처럼 거칠게 먹어치우는 사이 신카이는 난장판이 된 거실을 정리했다. 비닐봉투가 텅 빌 때 쯤이 되자 당장이라도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변할 것 같았던 험악한 기세는 많이 가라앉았고 쑥대밭이 된 거실도 정리가 끝났다. 신카이는 다시 정좌한 자세로 아라키타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정황은 이러했다.
 본래 집안일은 주마다 당번을 바꾸고 있었다. 한 사람이 장보기와 요리, 설거지를 하면 다른 사람은 거실 청소와 빨래를 했다. 동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라키타의 요리 실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신카이라고 솜씨가 썩 뛰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맛없는 요리를 참아가면서 먹어주고 있었다. 그나마 오랜 기숙사 생활로 빨래만큼은 둘 다 깔끔하게 잘 해냈다. 문제는 청소였다. 왜 청소가 거실로 한정됐냐면 아라키타가 정리를 하지 못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라키타 방의 더러움에 비하면 그의 요리 실력은 결혼 20년차 주부 급이라고 볼 수 있을만큼 위생상태는 심각했다. 솔직히 말하건대 하코네 고등학교 재학시절 주말마다 부원들이 가서 방을 정리해주지 않았다면 아라키타는 기숙사에서 퇴사당했을 게 뻔했다. 아라키타가 스쿠터를 타고다니며 무단 외박을 하는 등 불량배 짓을 하고다닐 적에도 잠잠했던 그 기숙사가 퇴사 위협을 보일 정도였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행히 신카이와 아라키타 모두 집안이 유복한 편이라 두 사람의 자취비용을 모으니 제법 넉넉한 투룸 맨션을 구해 각자의 침실을 확보하기는 쉬웠다. 그래서 서로의 방(아라키타의 방의 위생)은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거실 청소만이 청소 구역으로 정해졌다. 아라키타가 개인 위생관념은 떨어질지라도 일부러 신경써서 정리하는걸 못하는건 아니었기에 거실은 그럭저럭 남자 대학생이 쓰는 집다운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지난주까지 두 사람의 동거생활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문제는 조 과제, 빌어처먹을 염병할 조 과제였다. 지난주 주말, 뇌혈관이 터질 것 같은 조모임을 마친 이래로 아라키타는 강의 출석외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과제에 쏟아부었다. 최소한의 신뢰마저 버린 조원들의 행태에 그날 저녁 정상인 사람들은(들이라고 해봤자 7명중 3명밖에 남지않았지만) 아무말 없이 술을 각자의 잔에 퍼붓듯이 따랐더랬다. 그리고 누구랄 것도 없이 다음날 눈을 떠도 여전한 현실에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느끼는 두통은 숙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사태는 심각했다. 7명이 두달동안 할 프로젝트를 세사람이 일주일 내로 하자니 정말 죽을만큼 바빴다. 신카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잠들기 전에 보이는 아라키타는 늘 책상에 앉아 등짝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달라지는 것이라곤 옆에 쌓여있는 캔커피며 카페인 음료의 갯수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 정도였다. 같이 밥을 먹을 때나 서로 마주볼 뿐으로, 신카이는 가끔 일부러 소리내서 아라키타를 불러 얼굴을 확인하곤 했다.
 그만큼 아라키타는 시간이 없었다. 같이 동거하는 입장에서 그 말은 아라키타가 자신이 맡은 당번을 포기했다는 뜻이었다. 신카이는 거기에 대해서는 화가 나지 않았다. 놀거나 쉬는 시간도 없이 당장 잠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과제에 매달려 있는 꼴을 보면 얼굴도 모르는 조원들을 한대 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화는 나지않더라도, 아라키타의 상황을 이해한다고해서 신카이의 부담이 덜어지는 건 아니었다. 신카이라고 마냥 한가한건 아니라서 수업이며 레포트를 챙기다보면 금방 저녁 때였다. 매일 같이 쌓이는 빨래며 어질러지는 거실도 번거로웠고, 한창 때의 남자답게 두 사람이 먹는 양도 엄청나서 끼니 때마다 요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처음에는 나름 열심히 집안의 기둥 노릇을 하던 신카이였지만 나중에는 슬슬 지치고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야스토모, 오늘은 시켜먹자. 덮밥 뭐 먹을래?"
"야스토모, 양념이랑 후라이드?아니면 간장이랑 양념?"
"야스토모는 짜장 곱배기?탕수육은 대짜로 시킬게."
"야스토모, 편의점갈건데 점보 도시락말고 또 뭐 사올까?"
 
"-이랬는데.....기억 안나?"
"몰라 씨발!!!잠이 모자라서 걍 목구멍에 밀어넣기 바빴다고!!어쩐지 밥이 맛있더라!!!다 시킨거였냐!!!"
"아침에도 문을 여는 도시락집이 있다는 건 나도 처음 알았어."
"죽고싶으면 계속 그러고 있어라....."


 알찬 동네 정보를 습득했단 기쁨으로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신카이의 꼬락서니에 아라키타는 머리를 싸쥐고 탁자 위로 몸을 수그렸다. 아라키타가 청소와 요리같은 가사에 재능이 없다면 신카이는 금전 감각이 심각하게 모자라 달 단위로 금전 계획을 세우는데에는 서툴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부활동에 매진하느라 기숙사 식당이나 매점을 애용하느라 거의 돈을 쓸 일이 없었고 애초에 수도세나 전기세 등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기숙사 생활과 자취를 하면서 생활비를 받아 쓰는 생활은 달랐다. 자취가 처음인건 아라키타도 마찬가지였지만 초기 몇 달간 생활비가 들어오는 월 초에는 풍족하게 살다가 월 말에 컵라면으로 연명하는 실수를 경험하고나서 나름 돈 계산을 하게 된 그와는 달리 신카이는 여전했다. 공동으로 쓰기위한 생활비를 제외한 개인 용돈은 각자 마음대로 쓰고 있는데, 아직도 월말이 되면 신카이는 손가락을 빨면서 아라키타가 간식을 사는 걸 지켜보곤 했다. 그런 사람이 일주일 간 아무런 제지도 없이 단독으로 가계를 담당했으니 재정이 파탄나는건 당연한 처사라고 볼 수 있었다.


"아직 다음달까지 열흘이나 남았는데 어쩔거야!!이 돈으론 소면만 삶아먹고 사는 것도 못해!!"
"어....그러니까 가불을....."

"에라이 스무살 먹고도 책임감 없는 새끼야!!"


 결국 또 다시 소파 쿠션으로 두들겨 맞기 시작한 신카이였다.

 

 

 

-

아라키타는 느낌표와 헤어질 수 없다

신카이가 매우 심각하게 푼수가 되어가고 있으나 나는 이를 저지할 수 없다

오타 혹은 비문이 넘치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걸 체크할 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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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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